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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혁신아카데미 서평-거울 앞에 서기
작성자 송혜현 등록일 20.06.22 조회수 739

거울 앞에 서기

이리팔봉초 송혜현

 

당신은 책의 끝머리에서 제게 거울 앞에 당당히 설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고 생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거울 앞에 당당히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당해지는 것은 일단 뒤로 미루고 거울 앞에 꾸밈없이 서 보기로 했습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어떨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큰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당신의 책을 읽고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데 있어서 이렇게 명쾌한 해답은 처음 접해보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감히 대답이라는 말 대신에 해답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우리 사회에 가졌던 저의 해묵은 의문에 그만큼 당신은 시원한 답변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무 시원해서 뼈가 시렸다는 것이 슬플 뿐이지만 말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개개인의 자아의 문제로 환원된다는 대목이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라는 언어로 포착했지요. 교사이자 심리학도로서 저 역시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가 결국 개인의 정체성 문제와 연결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먼 길을 달려 촛불 혁명에 직접 참여하고 온 교사가, 다음날 교무실에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인재를 키워내려면 학교도 정글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자랑스럽게 펼치고 있는 것을 볼 때 심한 멀미가 올라왔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나 봅니다.

학교에 남아있는 권위주의와 군사 문화는 또 어떤가요?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이 실은 군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만으로도 긴 이야기는 필요 없을 듯합니다만. 그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교사의 반이 남자고, 그들 대부분은 한때 실제로 군인이었습니다. 그들이 제대 후 아이들을 부하 다루듯 한다면 그것이 꼭 그들의 인식 부족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반도 평화 문제가 우리에게 왜 시급한 일인지 이 지점에서 거울처럼 명확해집니다.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려면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도 제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 사회가 끊임없이 주입하는 이데올로기, 다시 말해 세상은 정글이고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식의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나려면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시대별로 경쟁이 어떤 가치였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당신은 특히 중세 시대를 언급하여 경쟁은 중범죄에 해당한다고 일갈했지요. 독일의 현대 교육이 경쟁은 야만이다라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충격이었는지요. 경쟁시키는 것이 거의 전부였던 우리 교육의 정체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교육 현장이 곧 범죄 현장이었다는 뜻인가, 이러한 의문을 품게 했으니까요.

독재정권 시절 왜 반공주의가 유일한 기치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갖는 콤플렉스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껏 제대로 된 사회주의 논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요. 자유 시장경제 논리를 제어할 어떤 이론도 없었으니 이 나라가 오늘날 헬조선이 된 것도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인권 감수성이 부재한 나라, 소비가 유일한 낙인 나라,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자기를 착취하는 나라... 이 취약하기 그지없는 나라에서 저 또한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니 이쯤이면 정상성의 병리성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 거울 속에 서 있는 나는 이만 괴물로 정의 내려야 할까요?

괴물이라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도 대한민국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저 같은 괴물이 어떻게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요? 태어나 보니 부모도 괴물이고, 살면서 만나온 사람들도 모두 괴물이었다면 거울 속 저 괴물은 어떻게 괴물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어쩌다 보니 한 문장에 괴물이라는 단어를 네 번이나 썼습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이 나라를 떠나야 할까요? 그러면 저도 서서히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막상 거울을 마주하고 보니 마음이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의문이 봇물 터지듯 쏟아집니다. 제아무리 당신이라도 이 물음만큼은 해답을 주지 못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답은 제 안에서 찾아야겠지요. 긴 여행이 되겠네요. 어찌나 슬픈지 발도 떼기 전부터 기운이 빠집니다. 그렇지만 함부로 희망차게 글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오늘날의 전 지구적 생태 위기가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에필로그에서 한 단락을 인용하면서 두서없는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먼 이곳까지 달려와 팔 걷어붙이고 열강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괴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행 내내 당신의 응원을 기억하겠습니다.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자신이 민주주의자가 되지 않는 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결코 안정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하리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p.26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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