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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의 속도 속에서 문학은 무엇을 지키는가
작성자 안예주 등록일 25.12.19 조회수 5

도파민 과잉 사회에서 변화하는 독서 감각과 사유의 의미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일상을 빠른 자극과 즉각적인 보상으로 채워 놓았다. 짧은 영상, 실시간 알림, 끊임없는 피드 속에서 우리는 기다림보다 즉시성을, 깊은 생각보다 가벼운 쾌감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생활 방식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감정 구조와 사고 방식, 나아가 예술을 감상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느리게 읽고 사유하는 과정을 핵심으로 삼아온 문학은 이 도파민 중심의 환경과 필연적인 긴장 관계에 놓이게 된다.

 오늘날의 독서 방식은 과거와 분명히 달라졌다. 긴 문장이나 복잡한 서사를 끝까지 따라가기보다는 요약본이나 짧은 글을 빠르게 소비하는 경향이 일반화되었다. 그 결과 독서는 점차 ‘읽는 행위’라기보다 ‘구경하고 반응하는 행위’에 가까워지고 있다. 독자는 등장인물의 내면에 천천히 몰입하기보다 인상적인 장면이나 문장만을 골라내 즉각적인 감정을 표출한다. 이러한 독서 환경 속에서 문학은 깊은 해석보다는 빠른 공감과 감정의 파편을 제공하는 텍스트로 소비되며, 언어와 의미의 층위 역시 점점 단순화된다.

 문학 창작의 방식 또한 이러한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독자의 짧아진 집중 시간을 의식한 작가들은 빠른 전개와 분명한 자극, 시각적 요소가 강화된 서사를 선택한다. 웹소설이나 SNS 기반의 짧은 이야기 형식은 이러한 시대적 감각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속도와 자극에 맞춰 구성된 서사는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하거나 은유와 상징을 정교하게 쌓아가는 데 한계를 지닐 수 있다. 문학이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예술이라면, 자극 중심의 흐름은 문학을 점차 하나의 소비 콘텐츠로 환원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도파민 과잉 사회는 정서의 깊이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학이 오랫동안 독자에게 제공해 온 슬픔의 여운, 사유의 시간, 감정의 침잠은 짧고 강한 자극의 연속 속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우리는 감정의 반응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 감정을 오래 붙들고 성찰하는 힘은 약해진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정서의 얕아짐은 문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한다. 문학은 본래 인간의 내면을 길게 들여다보게 하는 행위이며, 느리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학이 시대의 흐름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문학은 과잉 자극의 환경에 대한 하나의 저항으로 기능한다. 느린 서사, 절제된 문체, 집중을 요구하는 독서 경험은 도파민의 속도에 맞서 인간의 사유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즉각적인 소비 대신 조용한 몰입을 요구하는 문학은 감각적 피로가 누적된 오늘날, 균형을 되찾게 하는 예술적 공간이 된다.

 결국 도파민 과잉의 시대는 문학에게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여전히 느린 언어와 사유의 여백 속에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가. 문학의 역할은 바로 이 질문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데 있다. 문학은 자극의 세계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극 너머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재조정하도록 이끄는 언어의 힘이다. 빠른 반응과 즉각적 쾌감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깊은 이해와 오래 남는 공명을 가능하게 하는 문학의 가치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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