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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인력 부족 시대, 한의학이 낼 수 있는 해답
작성자 안예주 등록일 25.12.19 조회수 6

법·판례·여론이 보여주는 한의학의 가능성

 한의사는 한의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료인이다. 침, 뜸, 한약 등을 활용하는 한의학계에서 현대 의료기기의 활용은 오랫동안 ‘면허 범위를 벗어난 행위’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대법원의 판례 변화가 이어지면서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을 둘러싼 논의가 법적·사회적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은 분명하다. 의료 인프라는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지방이나 농촌 지역에서는 기본적인 건강검진조차 받기 위해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의원은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해 있어, 접근성이 좋은 의료 자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한의사에게 일부 진단기기 사용이 허용된다면, 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에서 빠른 1차 진료가 가능해지고, 조기 진단 및 치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현실 속에서 주목할 만한 법적 변화가 있었다. 2022년 12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사건에 대해 “의료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판결했다. 이는 기존의 “한의사는 전통 의료에 한정해야 한다.”라는 법 해석에서 벗어난 의미 있는 판례였다. 이어 2023년 뇌파계 사건, 2024년 골밀도 측정기 사건에서도 법원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내리며, 지나치게 경직되었던 의료법 해석이 점차 유연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민 여론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변화를 보인다. 2022년 대한한의사협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4.8%가 한의사의 현대 진단 의료기기 사용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75~80%는 의료비 부담 절감, 진료 시간 절약, 환자 만족도 향상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수치는 제도 변화가 실제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사단체들은 “기기 사용을 위한 전문적 교육이 부족하다.”, “환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라는 이유로 제도화를 반대한다. 특히 초음파나 방사선 장비의 경우, 사용자의 숙련도와 의학적 판단 능력이 안전성 확보에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 역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기 사용의 안전성과 효율성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라며, 제도 개선 논의에 조심스러운 견해를 밝혔다.  

 앞서 살펴본 판례 변화와 국민 여론은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이 더 이상 법적 금기나 사화적 소수의 의견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률상 ‘면허 범위’에 대한 불명확한 규정이 오랜 분쟁의 근원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진단기기 사용 가능 범위를 명확히 하고, 어떤 조건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를 법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또한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전문 교육 체계와 자격 인증 제도도 마련되어야 한다. 장비만 주어진다고 해서 곧바로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정부 주도의 ‘의료 융합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한의계, 의료계, 법조계, 행정 당국이 참여해 합리적인 규범과 교육·감독 시스템을 논의해야 한다. 시범 사업을 통해 실제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안전성과 효과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의료 인력 부족과 지역 의료 격차라는 현실 속에서 한의학의 역할을 공공의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 논의는 단순히 직역 간 권한 다툼이 아니다. 이는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 국민 건강 증진, 그리고 의료제도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다. 

윤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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