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가 된 교실, 우리가 잃어버린 교육의 본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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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안예주 | 등록일 | 25.12.19 | 조회수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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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 현장에서는 ‘7세 고시’, ‘9세 고시’라는 표현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영유아와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유명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현실을 국가고시에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공개된 문제들의 난이도를 살펴보면 사고력과 학습량 면에서 고등학생조차 부담을 느낄 만큼 높은 수준인 경우도 적지 않다. 이미 과도한 학업 부담에 놓인 청소년들조차 벅찬 현실 속에서, 더 어린 아이들까지 경쟁의 최전선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교육은 본래 지식을 얼마나 빨리, 많이 습득하느냐를 겨루는 과정이 아니다. 특히 성장 단계에 있는 아이들에게 교육은 스스로를 이해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고시’라는 표현이 교실에까지 스며든 오늘날의 교육 현실은 배움을 성장의 과정이 아닌 결과와 선발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러한 왜곡은 초등 교육 단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드러난다. 초등 교실은 아이들이 또래와 관계를 맺고, 놀이와 탐색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며, 배움의 즐거움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공간이다. 이 시기에 형성되어야 할 정서적 안정감과 자기 효능감은 이후 학습과 삶 전반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조기 성취와 비교 중심의 문화가 초등 교실까지 침투하면서, 아이들은 실패를 배움의 일부가 아닌 낙오로 인식하게 되고, 도전보다 회피를 선택하는 태도를 이르게 형성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초등 교육의 결핍이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초등 시절 충분한 시행착오와 정서적 지지를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단계에서 높은 학업 난도와 복잡한 인간관계에 직면했을 때 쉽게 좌절한다. 결과 중심의 평가에 익숙해진 학생일수록 작은 실패에도 자신을 부정하며 학습 동력을 잃기 쉽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집이 작은 충격에도 흔들리듯, 초등 시기에 길러졌어야 할 회복탄력성과 자기 신뢰의 부재는 고등학교 생활 전반을 위태롭게 만든다. 물론 ‘7세 고시’, ‘9세 고시’와 같은 조기 사교육 경쟁은 학교 안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가정의 선택, 사교육 시장의 구조, 그리고 뒤처질지 모른다는 사회적 불안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다. 따라서 학교가 활동을 늘리거나 수업 방식을 일부 바꾼다고 해서 이러한 현상이 즉각적으로 사라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 지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논의는 출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의 역할이 무력해지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가 감당해야 할 책무는 조기 경쟁을 직접적으로 차단하는 데 있기보다, 그 경쟁이 아이들에게 남기는 학습 격차와 정서적 상처를 완충하고 교정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공교육은 경쟁의 주체가 아니라 그 영향을 조절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초등학교는 이미 형성된 학습 격차를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부족으로 환원하지 않고, 학교 교육 안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기초학력에 대한 체계적인 관찰과 기록, 형성평가를 기반으로 한 개별화된 지원은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는 특혜가 아니라 교육의 형평성을 실현하기 위한 전문적 개입이다. 또한 학교는 선행 학습의 우위를 성적이나 서열로 환산하지 않는 평가 체계를 유지함으로써, 속도 중심 경쟁의 효과를 제도적으로 약화시켜야 한다. 정답의 빠른 도달보다 문제 해결 과정과 시도 자체를 의미 있게 다루는 평가 방식은, 아이들이 실패를 배움의 일부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만 학생들은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을 형성할 수 있다. 아울러 초등학교는 학부모의 불안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소통과 전환의 대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조기 사교육을 선택하는 많은 부모의 결정은 성취 욕구보다는 아이가 뒤처질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학교가 발달 단계에 대한 전문적 정보와 장기적 성장 관점을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학생 개개인의 성장 과정을 신뢰할 수 있는 기록으로 제시할 때, 사교육에 대한 의존은 완화될 수 있다. 결국 교사의 역할 역시 재정의되어야 한다. 교사는 조기 경쟁에 맞서 싸우는 통제자가 아니라, 그 경쟁이 아이에게 남기는 부담을 완충하는 전문적 동반자다. 비교와 서열의 언어를 차단하고, 실패가 허용되는 학습 환경을 설계하며, 성취보다 회복을 먼저 다루는 교실 문화를 만드는 일은 초등 교사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교육적 책무다. 초기 경쟁이 일상화된 오늘날의 교육 현실은 ‘7세 고시’, ‘9세 고시’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사용된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학습 성취를 지나치게 빠른 시점에서 측정하고 비교하려는 사회적 압력이 가정과 학교 전반에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많은 경우 이러한 경쟁은 학교 밖에서 시작되지만, 초등학교는 그 결과가 처음으로 공식화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초등 교육의 역할은 조기 경쟁을 직접적으로 차단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이미 경쟁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이 학습을 ‘비교의 도구’가 아니라 ‘이해와 성장의 과정’으로 다시 인식하도록 교육의 기준을 재설정하는 데 있다. 이는 단순히 활동 수업을 늘리거나 부담을 줄이자는 감성적 주장과는 다르다. 초등 교실은 성취의 속도를 평가하는 공간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을 정당하게 인정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경쟁이 불가피한 사회일수록, 초등 교육은 발달 단계에 맞는 학습 경험과 평가 방식을 통해 아이들이 조기 선별의 논리에 고정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결국 초등 교육이 지켜야 할 핵심은 ‘얼마나 앞서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아이들이 학습을 대하는 태도와 배움의 기준을 어떻게 형성하도록 도왔는가에 있다. 이 지점에서 초등학교는 조기 경쟁의 출발선이 아니라, 교사의 전문적 판단을 통해 학습 속도보다 이해의 깊이를 중심에 두며 조기 경쟁의 영향을 조정하는 교육적 개입의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권서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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