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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부

이름 호랑이 등록일 26.09.21 조회수 15

'가방 놔두고 얼른 협의실로 가서 달걀 만져야지'

우리 반에서는 요즘 달걀을 부화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따뜻한 온실을 만들고, 그 속에 달걀을 넣고 부화할 때까지 기다리는 실험이다.물론 가만히 놔둔다고 달걀이 저절로 병아리가 되는 건 아니다. 이게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온실 속 온도는 물론이고 습도도 적절히 유지시켜 줘야 하고,달걀이 골고루 따뜻해지도록 조금씩 요리조리 돌려 주기까지 해야 한다. 우리가 어미 닭이 되어야 하는 셈이다.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침 일찍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가 따끈따끈한 알을 만질생각에 들떠 있었다.달걀을 돌려 주는 일은 우리 반 아이들 누구나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반장 고은별은 순번을 정하고 정해진 사람만 달걀을 만질 수 있게 했다.어제 내가 한 번만 만져보게 해 달라고 졸랐지만,고은별은 딱 잘라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부화기 속에 있는 달걀들을 내가 먼저 가서 돌려 줄 생각이였다. 아주 잠깐, 10초 정도는 내 손바닥으로 따뜻하게 해 줘도 될 것 같았다. '고은별 네가 아무리 그래 봐라.일찍 가서  내가 실컷 만질 게다.' 나는 신나게 학교로 향했다. 5학년 4반. 새로운 교실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익숙해진 교실 신발장 앞에서 신발을 아무렇게나 툭툭 차 넣고, 실내화로 갈아 신고 몇 번 바닥에 콩콩거리며 교실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달걀 부화기는 선생님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곳인 5학년 협의실에 있다. 우리 학교는 안전을 위해 밤에는 교실에 전기가 끊어지지만 협의실에는 24시간 전기가 들어온다고 했다. 밤에도 어미 닭 품처럼 38도의 따뜻한온도를 유지싴기 위해서 우리 반 아이들은 알을 담은 부화기를 5학년 협의실에 두었다.들뜬 마음으로 교실 문을 막 열고 들어갔는데 교실이 이상했다.책덜상도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준비물들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뭐야, 어제 당번들 청소 제대로 안 했나 보네. 선생님께 다 일러야겠다." 아무도 없는 교실이 어색해서 일부러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혼잣말을 하려니 괜히 목소리가 개미만 하게 나왔다. 내 자리에 가방을 두고 다시 둘러보니 교실은 그냥 청소 안 한 정도가 아니라 난장판이었다.교실 이곳저곳에 흰색 물감이 뿌려져 있었다. 넘어진 책걸상은 물론이고 교실 바닥과 선생님 책상에도 물감이 튀어 있었다..'뭐지? 지난번 미술 시간에 써써던 아크릴 물감 같은데?'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대용량 아크릴 물감을 조별로 짜서 나눠 주시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준비물 바구니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크릴 물감이 찌그러진 체 뒹굴고 있었다. "뭐야! 누가 이런거야?" 화나고 당황한 마음에 버럭 소리를 쳤다. 이번에는 나도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가 나왔다. 누가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라 그냥 정말 놀라서 큰 목소리가 나왔던거다. 그 순간 복도에서 다다닥 다급하게 뛰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교실 문을 열어 보니 저 멀리 복도 끝에서 검은 모자를 쓴 그림자가 6학년 교실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내가 방금 지른 소리에 놀라서 달아나는 것 같았다. '범인이다!' 평소 명탐정 코난을 즐겨 본 내 본능이 말했다. 저기 뛰어가고 있는 저 검은 모자가 우리 반을 어지럽힌 범인이 틀림없다고.내가 방금 지른 소리에 놀라서 달아나는 것 같았다. '범인이다!' 평소 명탐정 코난을 즐겨 본 내 본능이 말했다. 저기 뛰어가고 있는 저 검은 모자가 우리 반을 어지럽힌 범인이 틀림없다고.'뛰어가서 잡아야 하는데, 아니 가서 얼굴이라도 확인해야 하는데......' 생각은 한가득이었는데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복도에서 달리기라면 누구보다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나다. 전담 시간 음악실, 어학실을 왔다 갔다 하며 우리 반 아이들과 레이스를 펼치면 1등은 항상 내 차지였다. 피구도, 축구도, 줄넘기도 만능인 노하민 조차 복도에서만 나를 이기지 못한다. 선생님께 혼나지 않게 발소리도 죽이며 빠르게 뛸 수 있는 난데, 왜 다리가 안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그때 교실에 지수진이 들어왔다. 5학년이 되고 한 달이 지났는데도 목소리를 몇번 못 들어 본 애다. 평소에 이야기도 잘 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여자애들하고 만 놀아서 그냥 조용한 애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거 나만 아는 비밀인데 노하민이 지수진을 좋아한다. 일부러 본 건 아닌데 노하민이 연습장에 '지수진 하트 노하민'이라고 적어 놓고, 이름 점을 본 흔적을 봤다. 수학 시간에 연습장이 없어서 노하민한테 한 장을 찢어서 받았는데, 앞 장에 글씨를 눌러쓴 흔적이 거기에 살짝 남아 있었다. 나는 사건을 수사하듯 연필을 눕혀서 몇 번 쓱쓱 칠해 보고 두 이름을 확인한 후에 다른 진구들이 보지 못하게 종이를 서랍 속에 숨겼다. 친구의 짝사랑을 소문낼 만큼 내 우정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앗! 이게 뭐야! 교실이 왜 이래? 물감, 이우주 네가 그런 거야?" 항상 조용하던 지수진이 목소리를 그렇게 크게 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냐. 나도 방금 왔고, 이미 이렇게 돼 있었어. 근데 방금 범인이 저기로 뛰어 갔어!" "범인 봤어? 어떻게 생겼어?" "아..... 아니, 얼굴은 못 보고 뛰어가는 뒷 모습만 봤어. 근데 검은 모자를 쓰고 있는 건 확실히 봤어." "응? 검은 모자라고? 나도 방금 누가 저기로 뛰어가는 거 보긴했는데.... 검은 모자가 범인인 건 어떻게 안 거야? 수상한데.... 너 왜 이렇게 학교 일찍 학교에 왔어?" "어? 어......나는 다,다, 달걀! 달걀 돌리려고 일찍 왔지. 오늘 우리 조가 당번이야." 바보 같이 범인처럼 더듬으며 말하고 말았다. 평소에는 말 한마디 안 하던 지수진이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물으니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애들 없을 때 달걀 만뎌 보려고 일찍 왔는데, 이게 뭔일이니? 물감 닦으려면 진짜 힘들겠다. 그럼, 뒷수습은 다른 애들이랑 선생님 오시면 하고 우리는 달걀 돌리러 가자." 지수진의 말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협의실로 향했다. 교실에 뿌려진 흰색 물감이 내내 찝찝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달걀을 실컷 만져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원래 선생님들만 이용하는 곳이라 그런지 막상 문 앞에 서자 문을 열기가 좀 망설여졌다. "야, 이우주, 문 안 열고 뭐 해. 내가 열게. 니와 봐." 지수진이 내 앞으로 끼어들더니 조심스럽게 협의실 문을 열였다. 끼이이익. 조용한 학교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끌날 때쯤 우리 둘은 그대로 멈췄다. 일시 정지. 그 순간 모든 내 세상이 멈췄다. 낸 생각도 멈췄고, 지수진도 멈췄고, 나도 멈췄다. 우리 세계를 보고 있던 누군가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마냥 모든 것이 한순간에 멈췄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내 머릿속은 새까맣게 변해 버렸다. 내 눈앞에는 "5학년 4반 관계자 외 만지지 말 것!" 이라는 경고문이 적힌 달걀 부화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부화기 주변에 달걀이 깨진 태 떨어져 있었다. 마치 교실에 아무렇게나 뿌려져 있던 흰 물감처럼, 부서진 달걀 껍데기와 일주일 동안 부화기에 들어 있었던 달걀 속 액체가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바닥에 흩 뿌려져 있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내 기준에서 좀 이상한 사람이다. 물론 내가 선생님을 나쁘게 말하는건 아니고....그냥 좀, 선생님은 만화에 나오는 괴짜 과학자 같다, 머리는 항상 부스스하고 실험복 같이 생긴 하얀 코트를 자주 입고 다니신다. 선생님은 실험복이 아니라 트렌치코트라고 하셨는데, 누가 봐도 실험복이였다. 그 실험복의 효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수업은 그냥 그런 데과학은 엄청 재밌게 가르쳐 주신다. 근데 이것만 가지고 선생님을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우리 선생님의 제일 특이한 점은 뭘 물어보면 잘 안 가르쳐 주신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선생님 나이도 모른다. 물어보면 맨날 스무 살이라고 그런다. 양심도 없으시지. 나이는 그렇다고 치자. 선생님도 숨기고 싶은 사생활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 그런데 수업 시간에 궁금한 걸 물어봐도 "너네가 알아봐." 라고 하신다. 선생님이면 학생들이 궁금한 걸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인터넷에 찾아보려고 하면 "어허, 수업 시간에 누가 휴대폰 꺼내나?" 하면서 알아보지도 못 하게 한다. 진짜 이상하지 않나? 그런데도 우리 반 애들은 포기하지 않고 선생님한테 질문을 한다. 사실 우리 반 애들도 나 빼고 이상한 편이다. "선생님! 이진경이 더럽게 코 파요. 코 파지 말라니깐 자기는 손 깨끗하게 씻어서 괜찮데요. 선생님! 손 씻었어도 코 파는 건 더럽잖아요?" 노하민은 진짜 엉뚱하다. 이 질문에는 선생님이 답하지 않아도 인정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코딱지를 빼내려는 손이 더러운 건지, 애초에 코딱지가 더러운 건지 갑자기 헷갈렸다. 진짜 이진경 말대로 손 씻고 코 파는 건 괜찮은 건가? 나는 그냥 그 행동을 보고 더럽게 느끼는 건가? 자존심 상하지만 나도 갑자기 노하민이 한 질문의 답이 궁금해졌다. "글쎄? 근데 더러운 게 뭐냐?" 선생님은 이런 식이다. 답은 안 알려 주고 우리에게 꼭 다시 물어본다. 잘 모르니까 대답하기 싫으신 게 분명하다. "아. 선생님. 더러운 건 안 깨끗한 거죠. 그러니깐......" 하민이는 말문이 막혔다. "선생님, 이 경우에는 노폐물  덩어리인 코딱지를 뺴내려는 손가락에 묻어 있는 병균이 몸에 들어오는 게 해로운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더럽다는 건 어디에 병군이 더 많냐, 이 이야기입니다." 코딱지를 파던 이진경이 이어서 말하자 우리 교실은 전부 웃느라 뒤집어졌다. 딱 한 사람, 선생님만 빼고, "근데 그걸 보는 사람은 손이 더러운지, 코딱지가 더러운지는 상관이 없을 테고, 그걸 보게 되는 것 자체가 불쾌한 거겠지? 그런데 코딱지랑 손가락 둘 중 어디에 병균이 더 많을 것 같아?"  이런 식이다. 분명히 이진경은 친구들을 웃기려고 한 말인데 선생님은 하나도 안 웃는다. 그리고 질문에 답은 안 하고 다시 우리한테 물어보기만한다. 이제 내가 우리 반 선생님이 좀 이상하다고 한 게 이해 되지? "코딱지가 아닐까요? 코딱지는 더럽잖아요. 우리 몸에서 필요 없는 노폐물이 나오는 거니까. 그게 병균이 많다는 뜻 아닐까요? 아......아닌가? 매번 손에 병균이 많다고 손 씻으라고 배우는데..." 고은별이 말했다. 아, 반장 고은별도 좀 이상하다. 우리 선생님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좋아. 그럼, 코딱지랑 손 중에 어떤 게 더 더러운지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도 말이 없었다. 사실 하민이는 그냥 이진경이 코 파는 모습을 보고 더럽게 느낀 건데, 선생님은 어느 게 더러운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이 이상한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정상으로 있으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외눈박이 나라에서는 양 눈을 뜨고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 그래서있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세균 배양?" 우리 집에 있는 과학 백과사전 책을 열 번도 넘게 읽은 나다. 물론 긴 글은 안 읽고 사진이랑 만화만 봤지만 말이다. 백과사전 세균 면레소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이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라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선생님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씀하셨다. "그럼, 너희가 세균 배양해 볼래?" 선생님은 점심시간이 지난 뒤 과학 시간에 쓰던 페트리 접시에 동그란 종이 두개를 넣어서 가져오셨다. 종이에는 각각 오늘 날짜와 코딱지, 손가락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여기 세균이 번식할 거다. 어디에 세균이 더 많이 생기는지 관찰해 봐." 과학 시간 실험이라면 소리를 지르며 돟아하던 우리 반 아이들이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선생님 눈치를 봤다. 노하민은 선생님이 가져온 종이를 한 번 힐끔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기까지 했다. "선생님. 혹시 모든 종이 위에 코딱지를 발라 놓으신 건가요?"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그 질문을 내가 영기 내서 했을 때,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확히는 코딱지를 물에 녹여서 발라 둔 거지." 질문 하나 잘못 했다가 일주일 동안 코딱지를 보게 생겼다. 둥근 종이 위레 우둘투둘한 뭔가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자세히 살펴서 관찰 일지도 써야 했다. 이건 전적으로 처음 질문한 노하민 탓이었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몇몇 친구들이 노하민을 노려봤다. 이 와중에 고은별은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얘도 정말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이렇게 이상한 활동만 한 건 아니다. 하루는 누군가 선생님한테 사람이 달걀을 부화 시킬 수 있냐고 질문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결곡 우리가 교실에서 달걀을 부화시켜 보게 되었다. 얼렁뚱땅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했던 많은 활동 중에 이 달걀 부화 프로젝트는 정말 내 맘에 쏙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딱지 같은 것만 보다가 병아리라니!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분리수거장에서 주워 온 스티로폼 상자에 온도조젉기를 달고 전구를 연결해서 부화기를 만들고, 그 속에 농장에서 받아 온 유정란을 넣었다. 사실 달걀 부화기의 설계도는 선생님이 만들어 주셨다.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부화기도 있지만 그건 과학자로서 낭만이 없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덕분에 우리는 21일 동안 이 알들의 어미 닭이 되어 온도도 맞춰 주고, 정해진 시간마다 알을 조금씩 굴려 주어야 했다. "달걀 부화는 그저 신기한 과학 실험이 아니야.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일이거든. 부모님께서 너희를 보살펴 주신 것처럼 너희도 책임감을 가지고 이 작은 생명을 지켜야 해. 절대 쉽지 않을거야. 알을 돌리는 일은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해 줘야 해서 매우 귀찮아. 알을 돌리다가 알이 깨지는 사고가 날 수도 있어. 심지어 주말에도 당번들은 학교에 와서 알을 돌려 줘야 해. 병아리가 무사히 태어나도 모이 주고, 똥 치우고,산책시키는 일을 해 줘야 해. 그래도 할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어요!" 선생님 말씀에 나를 비롯한 우리 반 친구들을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치며 대답했다. 선생님답지 않게 설명이 길었다. 어떤 활동이든 "알아서 해 봐."라고 하시던 선생님이 아니었다. 소중힌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평소랑은 좀 다른 느낌이었다. 그 뒤로 우리는 매일 당번을 정해거 알을 보살폈다. 어미 닭의 품 처럼 38도에서 39도가 되게 부화기 온도를 유지시켰고, 부화기 속에 물컵을 넣어서 습도도 50프로 정도가 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하루에 세 번 부하기 속의 달걀을 조금씩 돌려 가며 달걀이 따뜻한 기운을 골고루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선생님은 귀칞은 일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정말 하나도 귀찮지 않았다. 따뜻한 달걀을 손으로 만지면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 속에서 병아리가 생겨난다니.......정말 신기하다.' 우리는 자기 조의 달걀에 이름도 지었다. 우리 조는 쑥쑥 자라라고 '쑥쑥이', 노하민네 조는 '호랑이' 라고 이름 붙였다. "야, 무슨 병아리 이름을 호랑이라고 짓냐?" 아무리 나랑 유치원 떄부터 친구지만 노하민은 진짜 연구 대상이다. "ㅏ는 호빵이라고 짓고 싶었는데......지수진이 자구 사랑이로 하자고 하잖아. 그래서 한 글자씩 넣어서 호랑이라고 했지." 평소 노하민이었으면 절대 고집을 꺾지 않고 호빵이로 지었겠지만, 상대가 '지수진[하트]' 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하민이는 지수진을 좋아하는 걸 들켜도 상관 없나보다. 다른 애들이 눈치챌까 봐 나만 괜히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서 노하민이 살짝 괘씸했다. 그렇지만 비밀을 지키는 일은 우정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나 이우주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호빵이+사랑이=호랑이'라는 덧셈식에 하트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다른 머리 좋은 친구들이 풀어 버릴 것만 같아 너무 조마조마했다.예를 들어 고은별 같은 애들 말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고은별은 공부를 잘한다. 나도 수학, 과학은 자신 있는 편인데, 고은별은 좀 다른 수준이다. "호랑이? 이름 엄청 특별하게 잘 지었다. 우주야, 우리 조도 쑥쑥이 대신에 파닭이 이런 걸로 지을까? 호랑이에 비해서 우리 조 달걀 이름이 너무 평범한 것 같아." 각 조의 달걀 이름을 적어서 정리하고 있던 반장 고은별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 공부 머리랑 인생의 지혜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학경시대회 금상을 아무렇지 앟게 받아 오는 고은별이 호랑이를 보고 "쑥쑥" 대신 "파닭"을 떠올리다니........이래서 책은 가리지 않고 골고루 잘 읽어야 한다.고은별이 나 처럼 "셜록홈즈"나 "명탐정 코난" 아니 초급자용인 "엉덩이 탐정"이라도 좀 읽었다면 노하민의 비밀 짝사랑을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달걀 껍데기에 정성껏 이름을 적은 뒤, 우리는 정말 어미 닭이 된 것처럼 달걀들을 보살폈다. 특히 나는 우리 조가 달걀 돌리는 당번이될 떄 손꼽아 기다렸다. 병아리 부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백과사전 동물의 한살이 편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었다. 백과사전 시리즈 중 유일하게 긴 줄글로 된 설명까지다 읽는 책이었지만, 그 책의 어느 곳에서도 부화 중인 달걀의 기분 좋은 따뜻함을 설명하는 글은 없었다. 책에는 담기지 않는 세상의 신비를 탐험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흥분되어서, 우리 조가 달걀을 돌리는 시간이 되면 두 손으로 살포시 달걀을 감싸서 달걀의 온도를 느껴 보았다. '아마 에디슨도 이렇게 따듯한 달걀을 만지는게 좋았을 거야. 그래서 하루 종일 달걀을 품을 수 있었던 거겠지?' 위대한 발명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영광스러운 경험을 만끽하고 있을때, 나의 이런 기분을 깨트리는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애들아, 빨리 돌려야 해. 뚜껑 오래 열어 두면 온도가 떨어진 단 말이야. 이우주! 달걀 너무 오래 만지는 거 아냐?" 깐깐한 반장 고은별은 유독 나한테 많이 뭐라고 한다. 만약에 내가 에디슨 같은 휼륭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그건 고은별 탓도 한 숟가락만큼 있을 거다.  두고 봐라. 2학기 때는 내가 반장이 돼서 사사건건 다 걸고 넘어질거다! 일시정지!모든 것이 멈췄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는 그동안 달걀 부화를 위해서 노력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갔다. "흑흑......." 지수진이 흐느껴 우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수진은 깨진 달걀을 발견하고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눈앞에 처참한 광경을 보고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수진아. 괜찮아?  이거 내가 치울 테니까 너는 교실에 가 있을래? 곧 다른 아이들도 올 거고.....상황 설명 좀 부탁할게." 울고 있는 지수진을 보내고 나서 떨어져 있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주워 바닥을 닦을 준비를 했다. 화장지를 풀어 손에 돌돌 말다가 문득 어디선가 본 추리소설의 한 구절이 생각나 가만히 멈췄다. '사건 형장을 보존해야 하지 않나? 맞아. 함부로 치우면 안돼.'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그대로 둘까 하다가 이 광경 을 다른 친구들이 보지 않게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충격받은 아이들이 너무 많을거야. 만약 선생님이 제일 먼저 발견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선생님이라면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않고 치우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에 치워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래, 사진을 찍고 나서 치우자.' 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서 깨진 알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중간중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겨우 사진을 찍고, 눈을 꼭 감은 채 바닥에 흩어진 깨진 겁데기들과 고약하고 비릿한 냄새가 나는 흔적들을 닦아 냈다.어느 정도 바닥을 정리한 다음에서야 부화기를 살펴봤다.다행히 부화기 속 나머지 여섯 개 알은 무사했다.쑥쑥이도 제자리에 있었다.종이컵에 모아 둔 달걀 껍데기 파편을 살펴보니 여러 갈래로 갈라진'호.....랑.....이'라는 글자가 보였다.'노하민네 조 달걀이다. 아.....지수진.그래서 그렇게 울었구나ㅑ.' 검은 모자가. 분명 그 검은 모자가 우리 달걀을 깨뜨리고,우리 교실에 물감을 뿌려 놓았다.도대체 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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